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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새는 날아가면서 뒤 돌아보지 않는다.

인생에서 가장 따를만한 사람을 손 꼽으라면

그 중의 한 명

왜일까, 가만 생각해보면, 그의 삶이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삶과 많이 닮아 있었기 때문일까

남들이 흔하게 생각하는 교사로서의 길도, 안정적인 길도 맞지 않다 생각했다.

물론 몇년 전들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정말 깊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추세가 많이 늘어났다. 하지만 과거는 그러지 않았다. 그냥 철학이 왜 중요한가라는 책이 드문드문 트렌드로 퍼지다가, 내 스스로 왜 이렇게 사는가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 위로를 주는 책들이 나타날 무렵에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할까 어떻게 하면 더 다르게 살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하며 떠나고자 했다.

그래서 선택한게 호주 워킹홀리데이고, 프랑스 워킹홀리데이였다. 물론 그게 나를 크게 다르게 만들었나 싶기는 하지만, 음...

무튼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이상한 사람으로 손찌검 받는 일은 내게도 크게 다르지 않았었다.



상처받은 사람에 대한 조언도 해준다.


상처에 너무 상처받지 말 것


실망에 너무 실망하지 말 것


아픔에 너무 아파하지 말 것


이것이 두번째 화살을 피하는 방법이다


잠시 아플 뿐이고


잠시 화가 날 뿐이고


잠시 슬플 뿐이면 되는 것이다


그 순간이 지나면 우리는 다시 맑고 투명해진다.




언제라도 되새기고자 받아적어 놓은 글들

"나는 이제 이 청진기로 사람들의 영혼의 박동을 들으려 합니다. 단순한 심장 박동이 아니라 영혼의 울림을"

영적인 깨어남이란 새로운 각도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삶을 원하고 새로운 장소를 갈구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새로운 눈이다.


관념은 우리를 보호해주기도 하지만 많은 것을, 무엇보다 경이로움을 빼앗는다. 눈앞의 사람과 사물을 주의깊게 바라보지 않게 되고, 놀라워하지 않고 감동하지 않게 된다. 합리적인 머리만 작용할 뿐이다.


인생의 부를 결정하는 기준은 '얼마나 많이 느끼고 감동하고 살았는가'이다.


시인은 평범한 자두 열매에도 감동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앙드레 지드는 '지상의 양식'에서 말했다.


풀 벌레 하나, 꽃 한 송이, 저녁 노을, 사소한 기쁨과 성취에도 놀라워하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이다. 감동을 느낄 때 우리는 정화되고, 행복해지고, 신성해진다.


그리고 감동을 받아야만 감동을 줄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불을 전하려면 먼저 자신의 마음이 불타야 한다. 가장 가난한 사람은 내면의 불이 꺼진 사람이다.


마음의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과거의 일을 계속 곱씹으면서, 그것에 의해 왜곡된 인식으로 자기 자신과 세상을 대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물병의 무게가 아니라, 그대가 그것을 얼마나 오래 들고 있는가이다. 과거의 상처나 기억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오래 들고 있을 수록 그것들은 이 물병처럼 무게를 더할 것이다."


과거를 내려놓고 현재를 붙잡는 것이 삶의 기술이다.


자유는 과거와의 결별에서 온다.


내려놓을수록 자유롭고, 자유로울 수록 더 높이 날고, 높이 날 수록 더 많이 본다.


가는 실에라도 묶은 새는 날지 못한다.


새는 자유를 위해 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 자체가 자유이다.


다시 오지 않을 현재의 순간을 사랑하고, 과거 분류하기를 멈추는 것 그것이 바람을 가르며 나는 새의 모습이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몰라도 날개를 펼치고 있는 한 바람이 당신을 데려갈 것이다. 새는 날개짓에 닿는 그 바람을 좋아한다.


길일이란 다른 개념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해야할 일을 뒤로 미루지 않기 위해 '오늘이 바로 그 일을 하기에 길일' 이라고 말해온 것 입니다. 오늘 하지 않으면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오늘 즉위식을 거행하십시오.


고대인들은 단순히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과 영혼까지 감동시키는 경험을 아름다움이라고 했다.


그 어린 문어는 그렇게 발끝에서 머리 끝까지 나의 온 존재를 감응시키며 나를 몇 번 더 건드려보고는 어두운 밤바다로 사라졌다.


얼마나 많은 동물들을, 생명들을 우리는 먹는가. 우리와 똑같이 살아 있기를 원하고 행복을 갈망하는 생명체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살아간다. 그 삶을 잘 사는 것만이 그 생명들에 값하는 길이다. 그들이 어느날 꿈 속에서 우리에게 물을 것이다. 자신들의 수 많은 희생에 값하는 삶을 살고 있느냐고.


인간에 대한 가장 나쁜 예의는 '너는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바로 잡아야만 한다.'는 자세이다.


각자의 내면에 훌륭한 교사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일이다.


행복한 관계는 비평이나 조언이 아니라 상대방의 '순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쫓아온다.


모든 인간의 마음 안에는 하나의 원이 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 원이 넓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원이 더 좁아지는 사람이 있다. 그 원이 무한히 넓어질 때까지 신까지도 그 안에 들어올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것이 영적 대 자유다.


'나-그것' 의 관계는 기능적인 관점에서 상대방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쓸모의 관계이다.


'나-너'의 관계는 온 마음을 기울이는 관계이며, '너'를 의도에 따라 판단하지 않는다. 사랑의 관계이다.


모든 관계의 불행과 갈등은 '나-너'의 관계가 되지 못하고 '나-그것'이 됨으로써 온다고 부버는 지적한다


용도와 기능이 존중받아도 존재가 무시되면 진정한 관계가 불가능하다.


어떤 게스트하우스는 10년을 가도 나는 요금을 올려받을 수 있는 투숙객일 뿐이며, 어떤 게스트하우스는 한두 해 만에 가족처럼 된다. 존재가 풍요로워지는 장소는 두말 할 필요없이 후자의 경우다.


물론 '그것'없이 인간은 살 수 없지만 '그것'만 가지고 사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고 부버는 말한다. 설령 대상이 사물이나 동물이라고 해도 온 마음을 기울이면 '나-그것'이 아닌 '나-너'의 관계로 전환된다. 반려견과 식물이 행복감을 주는 이유이다. 존재의 무의미를 의미로 바꾸는 것이 '나-너'의 관계이다.


참된 삶은 존재와 존재의 만남으로 이루어진다.


참다운 '나'를 표현하기 위해서도 '나-너'의 관계는 필수적이다. 인간은 목적이지 수단이 아니다.


관계의 목적은 관계 그 자체, 곧 '나-너'의 만남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이라 해도 '나-그것'의 관계가 지배적인 사람은 행복으로부터 거리가 멀다.


초라하고 비굴한 삶은 우리가 그것을 안으로 받아들일 때만 일어난다.


따라서 고난에 찬 여정이 빨리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긴 과정이 되기를 신들에게 기도해야할 것이다.


오랜 과정 끝에 도달한 자기 발견이 더 진정하고 확고하기 때문이다.


아예 늙어서 목적지에 도달하는 편이 낫다. 지혜로운 현자가 되는 것은 긴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목적지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여정이며, 그 여정이 주는 성장이다.


아름다운 산호와 진주와 향수는 목적지가 아니라 그 길 위에서 발견된다.


오디세이아는 청춘의 출발이며 노년의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 서사시이다. 우리 각자는 책이나 영적 가르침을 통해서가 아니라 인생의 전 과정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오디세우스이다.


청춘을 보낸 지금 나는 깨닫는다. 나는 늘 스승들을 만나게 되리라는 믿음을 잃지 않았지만, 나에게 깨달음을 선물한 스승은 인생 그 자체였다.


청년 시인이었을 때 나는 삶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가졌는데, 그 질문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떠난 여행은 나에게 특별한 삶을 선물했다.


그 해답이 환상일지라도 그것이 없었다면 나는 길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새로운 장소들도, 무희와 현자와 상인들이 있는 항구들도 여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여행이 자기 성찰의 길러 불리는 이유는 목적지가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다. 험한 산맥을 넘고. 태양과 눈비와 추위를 견디고, 때로는 우회하고, 때로는 공동 숙소에서도 자야하는 전 과정이 주는 특별한 경험 때문이다.


보잘것 없는 곳이든 웅장한 곳이든 그 목적지들이 가진 목적은 우리에게 그것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선물하는 일이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은 삶을 경험하고 깨달음을 얻는다. 이것이 모든 목적지들이 숨기고 있는 참된 의도이다.


오디세우스가 여정에서 얻은 선물은 집이었을까


여정 자체에서 얻은 교훈과 경험들이었을까


당신은 진리를 발견하기 원하는데 누군가가 당신에게 진리를 제공한다면, 그것은 당신의 진리가 아니라 모조품에 불과하다.


진정한 여행은 어딘가에 가는 행위 그 자체다. 일단 도착하면 여행은 끝난 것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끝에서 시작하려고 한다.




우리의 각자 삶은 한편의 오디세이아이다



인생은 필사본이 아니라 각자 스스로 써 나가는 책이다. 우리는 예술가이며 예술 그 자체이다.


즐겁고,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사는 것들을 방해하는 교리들은 잘못 베낀 것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시작해야하는 가장 창조적인 행위는 삶의 매 순간을 붙잡는 일이다.


그대 스스로 자신을 찾아나가라. 다른 사람이 그대를 대신해 그대의 길을 정하게 하지말라. 그것은 그대의 길이고, 그대 홀로 걸어가야하는 길이다. 다른 사람이 함께 그 길을 걸을 수는 있지만 누구도 그대를 대신해 걸을 수 없다.



개인이나 공동체, 또는 자연이나 문화로부터든 그대의 것이 아니면 결코 취하려들지 말라. 그대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거나 그대에게 허락된 것이 아니면 그대의 것이 아니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도덕률


그렇게 하는 대신 린포체는 내 안의 의문이 더 깊어지게 만들었다. 깊어진 의문은 스스로 해답을 찾게 되어 있다. 그 추구의 시간을 단축 시켜주려고 미리 해답을 제공하는 것은 삶을 빼앗는 일이다. 필요한 시간을 들여 한 걸음씩 알아가는 기쁨까지도. 

새는 알에서 나올 때 두 다리로 힘껏 껍질을 깨고 나온다.

이때 사람이 껍질을 깨주면 다리 힘이 부족해뎌서 잘 날지 못하고 도태된다고 한다. 필요한 과정이 생략되었기 때문에 다리의 힘이 약해서 땅을 박차고 날아오를 수 없는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뇌르는 '나처럼 해 봐' 라고 말하는 사람 곁에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나와 함께 해보자' 라고 말하는 사람만이 우리의 스승이 될 수 있다라고 했다.


내 기억에 남아있는 스승들도 그런 이들이다.


해박하고 논리 정연한 설명보다 존재로써 보여주고 묵언 속에 나의 진면목과 마주하도록 도와준 이들, 나 자신의 강력한 의지 안에서 진정한 자유에 이르게 해준 이들이다.


진리를 발견했다고 말하는 사람을 따르지 말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따르라고 현자들은 권한다.


자신이 해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부터는 언제나 거리를 두게 하시고


'보라'라고 말하면서 놀라움 속에 웃는 사람들과는 언제나 가까이 있게 하소서.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테라피스트가 되어야한다.


공격자가 아니라 치유자가 되어야한다. 공격과 치유는 둘 다 공명현상이다. 어떤 에너지를 보내는가에 따라 동일한 에너지가 돌아온다.


시인 루미는 말한다.


"세상은 산이다. 당신이 말하는 것마다 당신에게로 메아리쳐 돌아올 것이다. '나는 멋지게 노래했는데 산이 괴상한 목소리로 메아리쳤어.' 라고 말하지 말라. 그것은 불가능하다.


상대방이 당신에게 어떤 행동을 하는가에 관계없이 그 선택이 당신의 본성을 결정한다. 자신의 낮은 차원의 본성을 따르면 당신은 낮은 차원의 당신을 거듭 만날 것이고, 높은 차원의 본성을 따르면 높은 차원의 자신을 실현하게 될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은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두려움, 분노, 실망 같은 부정적인 감정의 시간들은 마음의 왜곡된 지점을 알아차리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으며, 영원하지 않은 것에 대한 집착이 고통을 부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패마 초드론 - 모든 것이 산산히 부서질 때 <when things fall apart>



우리가 겪는 일들은 삶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사건들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일어난다. 예기치 않았던 불행은 껍질을 태워버리는 불과 같아서 껍질 속에 가려졌던 우리 본연의 모습을 보게한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은 모두 날씨 같은 것이고, 자신의 본질은 그 날씨에 영향 받지 않는 끝없이 파란 하늘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이 보낸 메시지에 귀 기울여 들은 사람이다.


슬픔은 기쁨을 위해 그대를 준비시킨다.


그것은 난폭하게 그대 집안의 모든 것을 쓸어가버린다.


새로운 기쁨이 들어올 공간을 발견할 수 있도록. 그것은 그대 가슴의 가지에서 변색된 잎들을 흔든다.


초록의 새 잎이 그 자리에서 자랄 수 있도록, 그것은 썩은 뿌리를 잡아 뽑는다.


그 아래 숨겨진 새 뿌리들이 자라날 공간을 갖도록. 슬픔이 그대의 가슴으로부터 흔드는 것마다, 훨씬 좋은 것들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공감 능력은 생존에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인간의 잔인성을 억제해준다. 공감 능력이 없으면 사람을 사물화하게 되고, 사람을 사물화할 수록 세상은 위험해진다. <감성지능 EQ> 대니얼 골먼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타적이다.


먹이를 집을 때마다 다른 우리의 원숭이들에게 전기 충격이 가해진다는 것을 알자 12일동안 먹기를 거부해 실험이 중단되었다.


거울 뉴런


인간의 공감능력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해준다.


사회성이 부족하거나 이기적이거나 자기 중심적이거나 심하면 자폐증으로 이어진다.


더 많이 갖고 더 우월한 자로서의 자비심이 아니라 자신과 동등한 인간에 대한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의 관심이었다.


누군가를 깊이 안다는 것은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그 얼굴 속 사람을 바라보는 일이다. 구분과 차별을 초월한 공감과 사랑이 그것에서 시작된다.


친절과 공감의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과 생명체들을 대하라.


지금 나를 아프게하는 사람, 혹은 가난과 억압으로 고통받는 사람, 지구촌 어느 분쟁지역에서 불안하게 생계를 이어가는 난민들이 한 때 우리의 어머니였고 내가 그 분이 지어준 잡을 먹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닫혀있던 마음이 열릴 것이다.


길에서 마주하는 사람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던 사람도 한 때 나의 어머니였다고 여기면 자애로운 미소로 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를 사랑하는 것과 내 눈 앞에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다르다. 세상을 구원하는 것과 이름도 모르는 타인을 자기와 동일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것은 다르다.


밤마다 그는 도토리 열매들을 펼쳐놓고 좋은 놈들만 고른다.


아픔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 중에서 건강하고 긍정적인 것만 선택해야 하는 것과 같다. 부서지고 금 간 감정들은 조심스럽게 골라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들이 인생의 자양분을 모두 빼앗아 간다.


삶의 지혜는 불행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 속에서도 건강한 씨앗을 심는데 있다.


가장 좋은 치유자는 자신이 깊은 상처를 입은 적 있는 치유자이다.


삶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고통은 마음 속에서 상상한 배와 현실 사과가 일치하지 않을 때 일어난다.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그 사건을 우리는 즉각적으로 개인화시키고 감정을 투영한다.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일어난 일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우리를 더 상처입히는 것이다. 고통으로부터의 자유는 문제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 마음에서 온다.


정신에 가장 해로운 일은 '되새김'이다.


마음 속의 되새김은 독화살과 같다.


문제를 느끼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 문제 때문에 쓰러지지는 말라.


배가 열리기 원하지만 사과가 열리는 경우는 허다하다. 삶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고통은 상상한 배와 현실의 사과가 일치하지 않을 때 일어난다.


외부의 일에 자신의 삶을 희생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이다.


자신이 원치 않는 일이 일어날 때마다 이것을 기억해야한다.


알아차리는 순간 자신에게 화살을 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리고 화살 쏘기를 멈추게 된다. 이것이 알아차림의 기적이다.


나는 살아있는 존재이므로 매 순간 다른 나이고, 어디에 있을지 스스로 결정하는 나이다. 따라서 타인이 생각하는 나나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을 자신이라고 받아들이는 순간 불행과 불만족은 시작된다.


사람들은 당신의 이름을 알지만, 당신의 스토리는 모른다. 그들은 당신이 해 온 것들은 들었지만 당신이 겪어온 일들은 듣지 못했다. 따라서 당신에 대한 그들의 견해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말라. 결국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아니라 당신에 대한 당신 자신의 생각이다.


때로는 자신과 자신의 삶에 최고의 것을 해야만한다.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최고의 것이 아니라.


호모 비아토르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방황하며 스스로 가치있는 삶을 찾아 나서는 존재를 뜻한다. 호모 비아토르는 길 위에 있을 때 아름답다.


꿈을 포기하고 한 곳에 안주하는 사람은 비루하다.


집을 떠나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을 가진 사람만이 성장해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 꽃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 나 역시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알게 되었고 그 만남들이 나를 성장시켰다.


중요한 것은 목적지가 아니라 목적지가 우리에게 부여하는 여정 그 자체이다.


그 여정이 나를 허물로 새로운 나로 만들어간다.


현실에서 해결해야할 많은 문제가 있다해도


푸른 꽃에 대한 낭만적인 꿈이 없다면 우리는 일생 동안 현실 문제에만 머물 것이다.


너 자신의 신화를 펼쳐라 unfold your own myth - 페르시안 시인, 루미


우주의 모든 요소들이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만 매 순간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계산과 두려움 때문에 뒤로 미룬 모든 날들이 우리가 놓친 길일들이다. 인생의 봄날은 언제나 지금이다. 행동하는 날, 그날이 바로 길일이다.


여행이 내게 준 선물은 삶과 세상에 대한 예찬. 그것이다


광부는 수 많은 돌들에 불평하지 않는다.


부자는 많이 감동하는 사람이다. 감동할 줄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감동하는 사람이다.


예찬할 것이 너무 많다고


언제나 예찬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할 것이라고


덜 움츠리고 덜 비난하고 더 많이 예찬하라


우리가 곤경에 빠지는 것은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라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헤매는 것 같아 보여도 목적지에 도달해서 보면 그 길이 지름길이자 유일한 길이다. 우리가 할일은 찾고, 찾아서, 나아가는 것 뿐이다.


진정으로 바라봄이야말로 사랑의 행위다.


눈 앞의 세상을 보지않고 피상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영혼이 고통받는다.


깊이 바라보면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면 사랑하게 된다.


때로는 우회로가 지름길이다.


그 우회로가 뜻 밖의 선물과 예상하지 못한 만남을 안겨준다. 먼 길을 돌아 곧바로 목적지로 가는 것 그것이 여행의 신비이고 삶의 이야기이다.


방황하지 않고 직선으로 가는 길은 과정의 즐거움과 이야기를 놓친다.


많은 길을 돌고 때로는 불필요하게 우회하지만 그 길이야말로 제대로 가는 것 일 수 있다. 헤매는 길 같아 보여도 목적지에 도달해서 보면 그 길이 지름길이자 유일한 길이다.


어떤 일에 성공하려면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한다.


자만심과 두려움은 자기 안의 위대한 신비가 보내는 메시지를 가로 막는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내리는 결정의 80퍼센트는 두려움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가슴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운 때문에 결정을 내리고 방향을 선택하는 것. 

두려워하는 마음은 인생의 비전을 차단시킨다.


안전한 길은 큰 기쁨을 주지 못한다.


맺으며

이 책뿐만이 아니라 

류시화님의 모든 책은 마치 시로 엮인 듯, 

영혼과 마음 아픔과 소통에 대한 모든 성찰과 대답이 들어있다.


왜 새는 날아가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고 했을까?
상처받은 것을 곱씹지 말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두고,
내 앞에 나타날 길들에 집중하며 살라는 것 아닐까.
이미 알고 있다 우리. 
Carpediem, Seize The day, YOLO.

결국 앞으로 나아가라는 것.

팀 페리스 역시 말했다.
위대한 테니스 선수들은, 공을 원하는 쪽으로 보내기 위해
테니스 공이 라켓에 닿는 그 충격점에 집중한다는 걸.
되려 보내는 과녁을 생각할 것이라 했던 짐작과는 다르다는 걸.
진짜로 아름답고 행복하기 위해선 눈 앞의 5분에 집중해야한다는 걸.

인생의 굴곡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에 대한 모든 것들이 담겨있으니

배가 고플지언정, 모든 책의 일언 일구를 다 내 것으로 만들어내기 전까지 엉덩이를 떼고싶지 않았다.


좋은 책을 만날 수록, 책이 사람을 키운다는 말에 더욱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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