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XPERIENCE/WORKING HOLIDAY

프랑스 워킹 홀리데이, 왜 갔어요?


노량진에 1년을 바치기 혹은 떠나기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특수교육학과를 나왔다.) 국가고시, 선생님으로 평생동안 대한민국에서 일할 수 있는 자격인, 임용고시에 지원하느냐, 아니면 다른 길을 선택할 것이냐 고민해야했다.

하지만 나는 노량진에서 고생하는 후배들, 동기들을 보니 나는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20에 조금 더 도전해보는게 맞지 않을까? 잃을게 없잖아? 1년을 여기에 투자하는 것보다는, 해외를 도전하는게 더 좋지 않을까? 

3년은 영어권, 3년은 불어권, 3년은 스페니쉬 권에 도전해볼까? 32살까지는 워킹홀리데이를 계속 할 수 있다던데?

정말 저런 생각도 했었다.

30이 되기 전까지는 이것이든 저것이든 아무거나 해봐도 밑질게 없다는 생각을 했다. 도전 그 자체가 자산이 될거라 믿었다.

어떻게 마음을 정해야할까.

외동이기에 앞서 늦둥이로 태어났기에, '승진아 네가 프랑스까지 멀리 가버리면 이 나이든 부모는 어떻게 하니?' 라는 부모님의 걱정어린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영상들 속의 강사들은 그런 말을 했다. "가슴이 뛰는 삶을 사는 것이 더 멋있지 않나요". 그걸 생각하면, 한비야 선생님의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문둥병 환자들을 살피면서도 해맑은 웃음을 가진 의사를 만난 이야기. 자기 자신은 그 일이 너무나 행복했다고.

외동이었지만, 그래도 젊을 때에 이런 저런 도전을 많이 해봐야되지 않겠습니까 라며 떠나는 쪽을 생각했다. 물론 떠난 것이 정말 잘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서 하긴 했다.

하지만,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할 당시, 어떤 게스트분이 해준 조언을 통해 답을 내릴 수 있었다. 좀 더 시원스럽게.

내가 부모님 곁에 있어도, 행복하지 않은게 좋나요 아니면 곁에 없더라도 행복한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좋으실까요?

그 질문들은 내게 떠나야할지 머물지에 대한 답을 줄 수 있었다.

부모님이란, 그 나름대로 많은 헌신들을 너무나 많이 하셨기에, 부모님을 어떻게 도움을 드리는 것도 낫지만, 아직 젊고 잃을 것 없는 시기에 이것도 저것도 안해보는 것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결론이 들었던 것.


아마도 대학생때부터 였을까?

아마 대학생 때부터,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서점을 들락거리고, '내 마음에 드는 좋은 감정은 뭘까? 나쁜 감정은 또 뭐지?' 라는 것에 마음을 집중했던 이력이 아마 어느정도 비중을 더하지 않았나 싶다.

공부도 공부지만, '내가 여기 왜 있는거지?'라는 고민을 끝없이 하던 시간들.

대학교에서도 나는 조금 다른 학생이긴 했다.

정말 교사가 되고 싶어 왔던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나는 여전히 방황중인 방황아 였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공부를 놓았던 것은 아니다. 내 나름대로, 군대 사지방에서 노트를 펼치며 개론 책을 들고 요약하고 계속 머릿속에 집어넣기위해 필사를 하기도 했으니.

다만 진정으로 이 길이 내 길이 맞을까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답을 묻고자 했던 것 같다.

물론 그 때는, 교육학 교수님에게 '교수님, 이게 제가 생각을 하는 이 생각들이 과연 생각이 맞는건가요?' 라는 인지장애적(?) 질문을 하기도 했으니.

그렇게 나는 내 마음에 대해 잘 모르던 어른아이이기도 했다.



당시 나에게 프랑스에 가야만 하는 이유는 충분했고 넘쳤다.

하나는, 펜팔을 통해 알고 있던 친구는, 내게 머물 곳을 줄테니 파리에 오면 내게 연락하는 메시지를 보냈던 것



더 앞선 것을 배울 수 있으리라는 기대

그리고 두번째는, 당시 장애인에 대해 최저임금을 줘지 않아도 괜찮다는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모습을 봤던 것(실제로 통과된건지, 법안을 붙인 것인지는 구분하지 못했다.) 다만, 아 이 나라는 아직도 인간에 대한 권리에 대해 이 정도 밖에 도와주지 않는 구나... 이 만큼도 인정을 해주지 못하는구나...

라는 인식에 실망이 컸었다. 그리고 박근혜가 당선되는 꼴을 보니... 아.. 이런 나라에서 내가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어떻게 독재자의 딸이 다시 대통령이 되지 이 나라는? 독일에서 히틀러의 딸이 다시 대통령이 되는거랑 뭐가 다르지? 정말 지하철에서 핸드폰 너머로 이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때도 숨이 턱 막혔었다. 이 나라에서는 살지 말아야겠다.

내가 더 커져서 생각이 바뀌고, 더 큰 사람이 된다면, 이런 사회에 내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면서...


논리, 다름을 이해하는 프랑스

게다가 프랑스라는 나라는, 중학생 때 사회 수업 내용이, 실제 삶에 도움이 되는 현실적인 것을 가르친다. 실제 고용주에게 불이익을 당했을 경우, 이를 고소하는 고소장을 함께 작성해보는 조별과제라는 것.

와.. 이 나라는 어떻게 됐길래 이렇게 제대로 가르치는거지? 

확실히 민중이 한번 혁명에 성공했던 나라다보니, 다르긴 다르구나...라는걸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지식E채널을 통해 알게된, 프랑스의 철학적 문화가 나를 사로잡기도 했다. 점수로서 남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얼마나 논리적이냐를 통해 스스로에 맞는 길을 찾아주는 시험 시스템. 그리고 그 문제들은 모든 프랑스 인들에게 그 날의 대화주제가 된다는 것.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생각을 존중해준다는 점, 그리고 그 다름을 서로가 이해하기 위해 마음을 열고 귀를 연다는 점들은 너무나 신박하게 들렸다.

사실 사람이 흐름에 맞게, 어떤 A라는 일에 대해, 이 일이 왜 일어났지? 이 깊숙히 고민할 수 있는 힘이 살아가면서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때쯔음, 우리나라의 교육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아무래도 교수님들이 문득문득 던지는 메시지들이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든 것.

지식E채널을 보며 우리나라가 괜찮은건가... 고민하던 그 때들. 질문은 금기시 되고, 까라는 걸 잘까는 부속품같은 인간이 더 잘되던 그때( 다행히 지금은 많이 변해왔다.)

그때는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까라면 깔 것이지 말이 많아! 라는 문화가 여태 내려온 탓에, 질문을 하거나, 눈에 띄거나 남보다 잘나면 눈치가 보이는 교실에서의 모습도 문득 영향을 준듯도 하다. 질문을 하면 이상한 놈 취급을 받는 문화가 일상이니. 대학교에서도 '왜'라는 질문을 하면, '선배는 참 질문이 많네요' 라며 되묻는 애들도 있을 정도이기도.

하라면 하는거지 뭐 왜 라는 질문이 왜 나오냐며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 일을 이해하려면 그게 맞는지 아닌지 내가 거슬러 올라가보고 맞으면 그렇군 하면서 넘어가는 유추의 과정이 필요한데, 이런 교육법은 어디에도 없었던 것.

난 한국의 대다수의 문제들이 이런 데서 왔다고 넌지시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청소년들의 자살문제들을 보면서. 까라고 까라는대로 했을 뿐인데, 왜 그들은 불행해져야 했을까. 왜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야할까 등등


사람 존중 문화가 내게는 너무나 설레는 것

그리고, 그 당시에는 상대평가로 남과 평가를 하며 누구는 A+를 맞고 누구는 B+를 받아야만 되는 상황들이 난 좀 우습게 느껴졌다. 이게 맞는건가?

지금의 한국이 그나마 이런 선진국들에 영향을 받아, 절대평가 혹은 서술형 평가 제도를 좀 늘리고 있는 편이긴 하다. 하지만 아직도 갈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당시 교육학 수업에서 조사하던 핀란드의 교육 정책 역시, 선진적인 덕분에 유럽에 대한 선망에 바람을 넣는 중요 요인이 되기도 했다.

 

특수교육학을 배우니,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들에 대해 고민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프랑스의 이런 모습은 너무나 신선했다. '다름'을 이해하고, 약자라도 끌어안으려는 모습들? 교육 평가에서 조차 실제적인 것들 위주로 평가하거나, 어렸을 때부터 실무 인턴을 시켜, 실제 현장에서의 업무가 그들에게 맞는지 아닌지를 체크해나갈 수 있는 사회적 기회를 주는 것.

중학생 사회수업 주제가 '고용주에게 부당대우를 당했을 때를 대비 상황 모의 재판' 였으니

민중이 혁명에 성공했던 나라다보니 다르긴 달랐다.

힘이 민중에게 골고루 잘 나눠져있는 느낌이랄까. 물론 내가 한국인이라 더 와닿았는지도 모른다. '만약 갑신정변에서 개화파가 잘 했었더라면, 동학 운동서 일본이 방해하지 않았더라면'과 같은 이상적인 것들을 생각해보기 나름이니...


그 나라는 너무나 성숙해보였기 때문이었다.


교육학을 배우다보면, 사람의 능력에 대한 평가는 그 사람이 실제 현장에서 수행하는 모든 역량으로 평가를 해야지, 지필과 점수만을 가지고 평가하기에는 올바르지 못하다고 여전히 믿는다.

책으로 보는 것과 직접 현장에서 일할 때 필요한 능력이 차이가 날 때가 많기 때문.

핀란드에서 역시, 교육의 기본적인 자세를 잃지 않고 이야기해준다.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이유는, 인생의 선배들이 그들에게 어떻게 하면 이 인생을 행복하게 살게 해줄 것인가 가르치는 것 아닌가요?" 

모든 평가와 교육은 실전에 써먹을 수 있어야한다는 교육학자들의 이론적인 모습을 그대로 시행하는 선진적인 교육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 물론 모든 시험이 다 이렇다는건 아니다. )그리고 서양인들의 고대 아테네의 영향인지는 모르나, 그런 교육학적인 이해가 모든 시민들에게 그대로 나타나, 질문하고 수다를 떠는 것 자체가 사회적인 문화라는 걸.

물론 언어교환을 통해 만났던 한 프랑스 친구는, '이런 바칼로레아 시험 너무 싫어요'라며 힘들어하기도 했다. 하지만, 논리적 사고 자체를 기르는 이 바칼로레아 라는 시험. 멋있고,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따라야 할 교육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지식으로만 먹고사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한다. 나만의 자리에서, 나만의 길을 찾으려면 이 논리적인 사고가 너무나 중요한데, 프랑스는 이를 알고 오래전부터 접목시켜왔던 것. 


학교는 프랑스를 배워야한다고 생각했다.

어떤게 옳은지 아닌지 모두가 머리를 모은다. 남과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들의 의견 하나하나가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더 많은 아이디어를 뭉칠 수 있을 때 더 큰 힘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함께 힘을 모아보는 연습을 하는 공간. 

난 그게 학교가 가져야될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대안학교랄까 좋은 학교들이 요즘 나오고 있긴 하지만, 부모들부터, 좋은 대학을 통해 좋은 시스템으로 얻어지는 좋은 혜택들은 분명히 있지만, 더 좋은 건 아이들의 인생이 먼저 행복해져야한다는 것을, 인생에 한번 밖에 없는 십대의 삶이 어둡고 괴롭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유럽 선진국들의 아이처럼 뛰어놀아야한다. 

늘 경쟁적으로만 초중고대를 모두 지내야하는 교육 시스테을 본다면 저 결과가 오히려 당연한 듯 싶다. 인간관계를 지긋지긋하게 만드는 시스템. 신나게 암기하지만 학교를 떠나면 잊혀지는 지식위주의 교육방식. 질문을 하지도,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지도 않는 교육 시스템. 그 아이들이 나와 취직이 잘되길 바라는건 욕심이 큰 것 아닐까?


토론과 실전, 모의와 질문

내 아이가 물고기를 낚길 바란다면, 물고길 낚는 법을 알려줘야하지 않을까?

다짜고짜 망망대해로 끌고가 물고기에 대해 일장 연설

낚시대의 종류가 뭔지, 물고기의 종류가 뭔지로는 답이 없다.

물고기가 어디있는지, 물고기를 왜 잡아야하는지, 어떻게 해야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지, 물고기를 잡기 위해 떠나야한다면, 그 배는 어떻게 구할건지 끊임없이 나타나는 질문들에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한다.

그런 한참의 토론과 모의를 해본 뒤에, 실전으로 나와 직접 찌를 던져보고 허탕도 쳐보고, 반성도 해보고 왜 그랬을까 고민도 해봐야한다 생각한다. 그렇게 해봐야 첫 물고기가 낚이지 않을까. 그리고 아 낚시가 재밌는 일이구나 혼자서도 더 열심히하지 않을까?

현장과 실제적인 건 없이 농부가 말 안듣는 소 잡아 이끌듯 사람을 가르치면 안된다는거다.

그냥 감옥같은 시멘트 빌딩에 철창으로 16시간씩 가둬두는 곳 말고 말이지.


평가의 기준은 어제의 내가 되어야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오늘날 논리적으로 사고하지 못해, 무엇이 옳고 그른지 조차 판단못해 이런저런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런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일찍부터 '대화'와 나와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여는 것. 서로의 뜻을 알아 듣기 위해 좀 더 차근차근 쉬운말로 이야기하는 모습. 

남과 다른 의견을 존중하는 모습들, 사람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들을 배워나간다면 우리 나라가 보다 나아질 거라 믿는다. 조금 더 일찍 아이들이 이런 것들을 만나도록한다면, 우리가 사는 곳이 훨씬 풍요로워 질거라 믿는다. 다름을 이해하면서 달라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될테니. 건강한 다름이 우리 옆에 자리잡을거라 믿는다.


많은 젊은이가 스스로 뭘 원하는지 좋아하는지 모르고, 사회로 배출되어 취업난에 이른 것은, 결국 누군가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 교육시스템의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행복할지, 어떻게 해야 이 사회에 도움이 될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기회의 부재,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힘에 대한 부재, 경쟁적 시스템 속에 20년동안 지내게 만든 것,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지 않은 것이 이 오늘날의 취업난을 만든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능력은 한국 청소년들이 OECD서 꼴찌(11년도 자료)라고 한다.


서양 조리의 제국인 프랑스에서 내가 배운 한식을 접목 시키면 어떨까?

복수전공으로 배우던 조리학에서, 한식 전통조리, 음양의 조화를 배우며, 음식이 사람을 치료할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에 열정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시기이기도 했다.

당시 배움을 얻을 수 있었던 교수님은 지명순 교수님이었다. 실제로 옛 고서를 직접 풀어내시면서 한식을 하시는 분. 덕분에 음양 오행을 열심히 배웠고, 그 덕분에 음식을 통해 사람을 치료할 수도 있다는 '대장금 스러운 마인드' 역시 내 안에 조금 싹이 트는 것을 느꼈다. 와.. 이 학문 진짜 대단하네..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과학을 다 만들어낸거지? 어떤 원리로 그런게 가능했던거지? 라며 조리쪽 분야에도 열정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니, 요리를 좀 더 배울 수 있는 프랑스라.. 프랑스 하면 요리 아닌가? 싶기도 했다.




다문화사회, Meltingpot을 배워보자

한국인과 외국인 커플이 조금씩 정말 드물었다(지금보다 훨씬 더). 조금씩 한류에 대해 관심을 갖는 외국인들이 늘어나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한국어를 가르쳐주겠다다 했었다. 그러면서 영어를 늘리고자 하는 속셈이었다. 

4년 전 이 나라에서는 '단일민족'이라는 것이 꽤나 자부심이고 자랑할만한 거리가 되는 양 역사책에 서술되고 있었다. 하지만 먼 훗날에는 미국처럼 다문화국가(Melting Pot)이 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K-pop과 한류 붐이 서서히 일어나는게 미디어에서 보였기 때문.

그렇기에, 그런 다문화국가로서 이미 로마제국 당시부터, 남 쪽의 아프리카, 서쪽의 라틴, 동쪽의 아랍과 아시아, 북쪽의 앵글로 색슨족과 노르만족 등 모든 다국적 문화를 수백년전부터 유지해온 프랑스에가서 그 문화를 피부로 느낀다면 내 안목이 더 넓어지지 않을까 했다. 그리고 먼 나중에 내게 더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혹시 알까, 나중에 다문화 교육을 하거나 그럴 때 이런 점이 이점이 될지


이렇게 문화적, 조리 기술 + 프랑스의 인권의식과 선진적인 교육문화

아 한가지 더, 프랑스의 언어가 UN에서도 여전히 사용될 만큼, 세계적인 언어이며 프랑스 문화가 서양 사회에서는 상류층의 고급 문화라는 것을 알게되었으니, 불어를 익히는 것은 내게 꽤 많은 메리트가 있겠구나 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열정이 생기더라

프랑스 워킹홀리데이를 신청서를 대사관으로 보내야 할 때, 위와 같은 내용을 1-6번까지 항목으로 나열해 동기서에 작성해서 제출했었다. 물론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받으면서 ^^; 그 덕분에 별 차질없이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무사히 만들 수 있었다.